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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의 영화들

 5월엔 좋은 영화들이 많았던 것 같다. 전부는 아니지만 그래도 꽤 봐서 다행.

 1. <우리에겐 교황이 있다>
 아무런 정보도 없이 봤는데 알고보니 감독이 거장 소리 듣는 사람이었다. 문제는 내겐 이 영화가 별로였다는 것.
 영화는 두 가지 축으로 진행되는데 하나는 교황의 고민이고 또하나는 바티칸에서의 코믹한 모습들이다. 일단 민감한 소재에 과감하게 뛰어들었고(바티칸 측이 어떤 태도였는지는 모르지만) 연출이나 연기는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내게 좋은 영화로 남지는 않았다.
 교황의 고민이 가장 직접적으로 드러나는 것은 여자 정신분석의를 찾아가서 상담을 하는 장면이다. 신임 교황은 직접적으로 이야기한다. 직업으로 인해 즐거운 날도 많았지만 결혼도 하지 않고 다른 동반자도 없이 무대에 오른 배우처럼 어떠한 역할을 수행해야 하는 처지였노라고. 직업을 묻는 상담의에게 한 배우라는 대답은 복합적인 의미다. 어린 시절 자신의 꿈이기도 했지만 실제로 종교지도자의 역할은 배우와 흡사한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이후 그는 극단을 따라다니며 일종의 현실도피를 한다(그리고 <갈매기> 해석이 마음에 안 들어서 감점요인 추가요). 하지만 자신의 피난처인 극장에까지 종교의 손길이 뻗치고 그는 바티칸으로 돌아가게 된다.
 다른 하나의 축을 이루는 바티칸 장면은 사실 여유나 배려를 가질 수 없는 권위를 말해주는 것이다. 남자 정신분석의가 처음 교황을 만나는 장면은 상담을 공개적으로 하고 대화의 내용을 제한하는 태도를 통해 억압을 보여준다. 대역을 통해 교황을 연기하면서 추기경들이 속는 장면도 논리나 근거를 벗어난 위상을 보여주며 즐거운 배구 장면은 한 순간에 코트를 떠나 돌아가는 모습을 통해 역시 그들이 발이 묶인 사람들이라는 걸 보여준다. 추기경들의 일상은 약물 등을 통해 보여지듯이 압박의 연속이다. 배구는 그들에게 엄청난 심리적 해방과 웃음을 주지만 그들은 교황이 돌아오는 순간 뒤도 돌아보지 않고 코트를 떠난다. 그리고 결말.
 상당히 비판적인 영화고 주제 전달도 명확했지만 동의하기 힘든 내용이었다. 영화의 출발이 현실 비판이니까 나도 진지 먹고 반박하자면, 결국 추기경들은 자신이 선택한 인생을 살고 그 중에서도 엄청난 성공을 거둔 인물들이기 때문이다. 그들이 성직을 떠나지 않는 이유에 대해서는 수많은 변명거리가 있겠지만, 결국은 자기 선택이 아닌가. 지금의 사회적 위치, 지금 받고 있는 존경을 포기하기 못하기 때문이다. 스트레스는 전세계 모든 직장인들의 고민이다. 성직에 있는 사람들의 특이점이라면 전통과 신도들 정도겠지. 하지만 반대로 말하면 그들은 누구의 생계도 책임지지 않는다. 사업 망하면 직원들 실직하는 사장님과 다르다는 이야기다. 종교의 권위가 일반인을 압박한다면 이야기가 다르겠지만 영화에 나오는 성도들은 다들 그냥 초롱초롱한 분들이다. 결국 이 영화는 교회의 권위주의와 실상에 대한 풍자영화가 되는 셈인데(종교지도자들의 인간적인 모습을 그리기도 했지만 그것 역시 권위를 깎아먹게 되므로) 그런 면에서의 완성도는 나쁘지 않지만 보편성은 획득하지 못했다. 거장이라는 수식에 전혀 맞지 않았다.

 2. <셰임>
 아주 깔끔한 영화다. 명확한 주제의식에 맞춰서 절제된 영상을 보여준다. 필요없는 장면은 거의 없다고 해도 좋을 정도고 편집도 정확하다. 바에서 노래를 부르는 장면이 약간 튀는데, 이건 의도된 거지. 배우와 스텝 모두가 자신이 뭘 만들고 있는지 알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캐리 멀리건은 굉장히 훌륭한 배우인데, 어쩌면 이 배우의 가장 훌륭한 점은 작품을 고르는 안목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3. <위대한 개츠비>
 결론부터 말하자면 엄청 마음에 안 들었다. 좋아하는 감독과 배우가 만나서 개판을 쳤달까. 바즈 루어만 감독 자체가 문제가 있다기보다 작품과 맞지 않았다. 개츠비는 원작이 고전이기 때문에 어렵기도 했겠지만 이번 영화는 원작의 난점보다는 감독의 취향이 문제였다. 개츠비는 러브스토리로 해석할 수도 있고, 미국의 사회상을 말할 수도 있으며, 자신의 환영을 향해 달린 남자의 이야기일 수도 있고, 이전과 달라진 현대인들의 모습을 그릴 수도 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감독은 이 중에 러브스토리 부분을 확고하게 지지했으며 다른 요소들을 거의 뭉개버렸다. 종이로 접은 학을 압착해버렸달까? 다층적이고 입체적인 작품을 철저하게 한 가지 시각에서만 그렸다.
 여기서 반론이 있을 수도 있다. 그건 감독의 해석이니까 니가 깔 수 없는 거 아니냐. 물론 맞다. 나 역시 100명의 독자가 있으면 101개의 해석이 존재한다고 믿는 사람이니까. 하지만 그 말은 바즈 루어만에게 그대로 돌려줄 수 있다. 감독은 자신의 선택한 단 하나의 시각을 철저하게 강요했다. 그렇게 집요한 나레이션은 처음 봤다. 물론 감독이 원작에서 원하는 요소만 빼내서 재구성했으면 할 말이 없지만 원작의 스토리, 흐름, 장면, 대사를 그렇게 집어넣어놓고 그 사이사이에 다른 걸 넣어서 자신의 시각을 강요하니까 열이 받는 거다. 감독이야말로 자신의 해석을 강요했으니까.

 4. <앤젤스 셰어: 천사를 위한 위스키>
 <빵과 장미>,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만 봐서 뜻밖이었는데 원래 이런 따뜻한 소품같은 영화도 만든다고 한다. 이런 류의 영화들에서 흔히 보이는 쏠림 없이 중심을 잡으면서도 훈훈해서 가볍게 보기 좋다. 대중적인 영화였는데 개봉관 숫자가 대중적이지 못하다.

 5. <노킹 온 헤븐스 도어>
  세월이 느껴졌지만 그것이 나쁘지는 않았다. 사실 얘들이 나쁜 짓도 꽤 하는데 요즘엔 이렇게 과감하게는 못 가는 것 같다. 그런 면이 오히려 현대에 와선 잃어버린 매력이라는 느낌이었고, 역시 마지막 장면이 참 아름답다.

 6. <아이언 맨 3>
 블록버스터의 스토리는 포르노 영화의 그것과 같다는 게 내 생각이었다. 실제로 그 정도도 못 해주는(심하게 거슬리는) 영화가 많기도 하고. 하지만 요즘 블록버스터는 가끔 스토리를 비롯해서 집중을 잘 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 영화도 그랬다. 액션도 특성에 잘 맞았고(물론 개연성은 포기했지만) 전달도 명확했다. 이러면 드라마들이 더욱 분발해야 하는데 말이지...

 7. <러스트앤본>
 나쁘지는 않았지만 생각보다는 별로였다. 같은 날 개봉한 <셰임>이 너무 좋아서 기대가 과했는지도 모르겠다. 이미지가 강한 영화였기 때문에 서사를 중시하는 나랑 맞지 않았나 싶기도 하고.
 몸이 두드러지게 나오는 건 좋았다. 수영을 통해 활기를 찾는 것과 격투기를 통해 노력할 대상을 찾는 것은 너무 깨달음이나 생각이 중시되는 요즘 상황에서 드물게 실질적인 시각이라는 느낌이었다. 일회적인 이벤트가 아니라 점진적인 개선이라는 점도 좋았고. 마리옹 꼬티아르의 연기도 좋았지만 알리의 캐릭터가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어쨌거나 주인공은 착해야 하기 때문에 거칠지만 선은 지키는 식의 묘사가 많은데 알리의 경우에는 그 선이 상당히 내려갔다. 동물에 가까운 캐릭터랄까. 스테파니가 주저앉은 사람이라면 알리는 사회화가 되지 않은 사람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더 긴 과정이 필요했던 거겠지. 물론 그런 순수함 때무에 스테파니를 정상인처럼 대했던 것일 테고.
 제목은 내용과 직접적인 연관이 없다. 러스트는 둘이 겪고 있는 현재의 고난, 본은 원래 둘이 가지고 있던 품성 정도로 해석할 수 있겠다. 폼은 무너졌지만 클래스는 있는 사람?

 8. <테이크 쉘터>
 감독이 영화라는 매체를 굉장히 잘 이해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장면이나 대사, 구성을 통해 관객에게 무언가를 전달한다는 것. 처음에 나오는 두 개의 대사가 많은 것을 말해줬다. 일터에서 비가 올 것 같다는 커티스의 말에도 불구하고 동료는 작업을 강행하지만 몇 시간 뒤 실제로 비가 오고 작업은 중단된다. 사만사의 초대를 받은 여자는 커티스를 살짝 까면서 30년 후에는 다들 커티스처럼 될 거라고 말한다. 노골적인 복선이다.
 불안을 형상하는 연출에 대한 이야기야 뭐 많이들 했으니까 접어두고, 내가 흥미로웠던 건 두 가지다. 첫번째로, 커티스와 같이 다른 사람들이 전혀 인지하지 못하거나 다른 전망을 내놓는 와중에 혼자 무언가를 주장하는 인물은 몹시 개인적이다. 하지만 커티스가 불안에 빠지는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자신의 가족이 위해의 대상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커티스의 행동으로 인해 직접적인 피해를 받는 것 역시 가족이다. 불안에 대비하면서 현실의 안락이 흔들리기 때문이다. 결국 커티스는 자신이 지켜주려고 했던 사람들에게 어느 정도의 불행을 가져다주며, 가족들은 자신을 지켜주려는 사람에게 불만을 갖게 된다. 두번째는 커티스와 사만사가 놀랄 정도로 이성적이라는 사실이다. 커티스는 설명할 수 없는 불안에 빠져 방공호를 만들지만 그 모든 과정중에 자신이 틀렸을 수도 있다는 생각하면서 자신을 진단하고 상담을 받는다. 사만사 역시 남편의 생각에 동의하지는 않지만 그 의견을 뭉개지 않고 절충안을 제시한다. 사만사를 정말 크게 화를 낸 건 커티스가 방공호를 꼭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을 때가 아니라 의사 교환 없이 대출을 받고 마당을 파냈을 때였다. 커티스의 불안은 연역적 추리의 결말이 아니었기 때문에 논리적으로 합당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토네이도가 실제로 발생하는 지역이기 때문에 방공호가 말이 되지 않는 건 아니지만 오일비를 맞고 사람들이 공격적으로 변하는 건 도저히 동의할 수 없는 발상이다. 하지만 커티스가 느끼는 불안이 완전히 말이 되지 않는 건 아니며(미국에는 실제로 태풍에 대비해야 하는 지역이 있고, 스위스에선 방공호가 일반적이다) 무엇보다 커티스는 완전히 믿고 있기 때문에 사만사는 절충안을 제시한다.
 현실로 돌아와서, 이것이 지금 미국이라고 치자(일반적인 해석이다). 미국은 911 이후 상당히 불안한 상태다. 하지만 어느 정도로 대비할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갈릴 수 있다. 안보에 대해 민감한 쪽이 커티스, 상대적으로 둔감한 쪽이 사만사라고 할 때 공항이나 공공장소에서 안락을 희생시키면서까지 검문이나 대비를 철저하게 하자는 주장은 결국 모두를 지키기 위한 것이지만 사만사 입장에서는 그 비용과 귀찮음때문에 '니가 너무 민감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커티스는 생각이 다르겠지만 논리적으로 설복시킬 수는 없다. 결국 이건 보험 가입과 마찬가지로 전망에 가까운 것이라 결과는 장담할 수 없기 때문이다. 방공호에 숨었더니 그냥 태풍일 수도 있고 실제로 오일비가 내릴 수도 있다. 하지만 오일비가 내릴 때면 이미 늦은 것이다. 결국 커티스와 사만사는 미래를 알지 못한 채 어떤 선택을 해야 한다. 그리고 그럴 때야말로 이성적으로 상대방의 입장을 이해해야 한다. 생각이 다를지라도.

 말로 해도 이렇게 길고 복잡한 이야기를 영화로, 그것도 불안이라는 감정을 매개로 풀어내다니. 대다나다.

by 날아라개고기 | 2013/06/04 20:36 | 감상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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