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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적이고 논리적인 귀결 - <나의 마더>

 SF에 익숙하지 않은 시청자의 관점은 사실 잘 모르겠다. 흔히 포스트 아포칼립스라고 부르는 이 장르에서 중요한 건 그 재앙의 원인이 아니다. 그래서 그 뒤에 뭘 하느냐 하는 것이다. 하지만, 원인이 중요하지 않다고 해서 아무 상관도 없다는 건 아니다. 그냥 3차 세계대전이 일어났다고 퉁치고 뒤의 이야기를 그릴 수도 있지만. 대재앙의 원인이 뒷이야기의 동력을 만들 수도 있다. 이 작품은 후자에 속한다.
 먼저 이 작품의 훌륭한 점에 대해서 짚고 시작하고 싶다. 이 영화는 주제와 이야기의 관계가 긴밀하며 논리적이다. 그리고 반전을 다루는 많은 영화에서 간과하고 있는 사실이지만, 반전으로 인해 앞선 전개에서의 의문점이 모두 해소된다는 점에서 아주 모범적이다. 마지막 조각을 놓는 순간 전체 그림의 구멍도 사라지는 것이다. <식스 센스>처럼.
 양육자가 로봇이라는 걸 생각했을 때 이 시설에는 굉장히 많은 구멍이 있다. 충전할 때 잠을 자는 로봇이라거나, 그럼으로 인해 쥐가 전선을 갉아먹어서 정전이 되도록 감지하지 못하는 허술한 시스템(공식적으로 이 시설에는 백업이 없다)부터 해서 외부자가 침입한 이후에 드러나는 소각로 청소 문제, 디스켓 형태로 보관되는 양육 과정의 기록, 일종의 마스터키인 마더의 손, 기계적인 랙을 이용한 배아 관리 등등. 하지만 이 모든 것이 준비된, 탄로나기 위한 속임수라는 걸 알게 된 순간 헛점은 복선이 되고 결점은 장점이 된다. 
 이 이야기를 좀 더 자세하게 해보자. 마더의 입장에서 말이다. 마더의 목표는 훌륭한 양육자를 기르는 것이다. 훌륭한 인간을 양육하는 것과는 다르다. 훌륭한 양육자는 그 스스로 훌륭한 인간을 길러낼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마더는 건강한 신체와 풍부한 지식에 더해 윤리적인 주제를 포함한 교육을 한다. 자, 그럼 이것으로 충분할까? 그렇지 않다. 이대로라면 양육자는 마더가 되고 인간은 언니오빠누나형 가운데 하나가 된다. 소년/소녀가장은 엄마/아빠가 없을 때 성립하니까. 여기서 문제가 발생한다. 보통의 인간이라면 수명이 다하겠지만 로봇은 수명이 없다. 그렇다고 그냥 떠나는 것도 부자연스럽고, 갑작스런 사고를 가장해서 넘겨주는 것도 책임을 떠넘기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래서 로봇은 인간이 주체적으로 자신이 양육자의 역할을 원하게 되는 상황만 만들고자 했다. 이 목표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빈틈없는 기존의 양육자인 자신이다. 이 건에 대해서 마더는 아주 전향적인 결정을 내린다. 
 여기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마더가 딸을 키울 때 단지 기계로 된 보모의 역할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마더는 딸에게 정서적인 부분에 대해서도 완벽한 엄마였다. 침대 위에 장식을 하고 전혀 생산적이지 않은 놀이를 함께 한다. 그리고 딸을 이름이 아니라 '딸'이라고 부르지. 심지어 자신의 이름은 그냥 '엄마'다. 하지만 당연한 일이 아닌가. 그저 먹이고 입히는 사람은 부모라고 하지 않는다. 마르지 않는 샘물처럼 끊임없는 사랑을 주는 것이 부모다. 그런 사랑을 받고 자란 아이가 자신의 아이를 사랑하게 되는 것은 당연한 흐름 아니겠는가? 심지어 이 딸은 다른 가정을 관찰할 수 없다. 그런 양육자의 역할을 하는 동시에 어떻게 딸이 자신을 버리고 스스로 양육자가 되도록 만들 수 있단 말인가? 이 어려운 걸 마더가 해냅니다. 
 물론 마더에게는 거의 무제한의 자원이 있다. 마더에게는 필요한 모든 정보와 풍부한 자원이 있었다. 필요한 건 단지 연습이었겠지. 지금의 딸에게서 실패하고 나면 다음의 딸/아들에게 다시 한 번 시도하면 된다. 그래봐야 소각로에서 한 세트의 뼛조각이 더해지는 차이만 있겠지. 하지만 이 모든 것을 계획했다는 것이, 이 감정적이고 논리적인 계획을 세웠다는 사실 자체가 정말 굉장하지 않은가? 마더가 지구 대부분의 공간에서 인간을 쓸어낸 건 이미 이 계획을 확립한 다음이었을 것이다. 당연히 그렇지. 마더의 목적은 학살이 아니라 재시작이다. 그렇다면 인간의 배아라는 특정한 조건에서만 확보할 수 있는 자원을 포함해서, 자신의 계획에 필요한 모든 요소를 확보한 다음 일을 시작했을 것이다. 그럼 거꾸로 돌아가서 마더는 인간이 멀쩡하게 살아 숨쉬고 지구에서 개판치는 상황에서 이걸 시행했다는 말이 된다. 

 여기서부터는 영화에서 명시적으로 나오지 않는 부분이다. 하지만 몇 가지 단서를 통해 유추할 수 있는 사실이기도 하다. 일단, 마더는 인간을 사랑한다. 그렇지 않다면 이 번거로운 과정을 할 필요가 없다. 종래의 인간을 죽이는 것부터 미래의 인류를 위해 옥수수밭을 만드는 것까지, 이 모든 수고를 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힐러리 스웽크에게 마지막으로 찾아갔을 때 그녀의 컨테이너에 대해 경멸과 분노를 살짝 표시한 것까지 포함해서 마더는 인간을 사랑한다. 다만 그 방식이 보통의 부모보다 가지를 자르는 정원사의 그것에 더 가까웠다는 정도의 차이가 있다. 물론 이쪽 정원사는 가지 몇 개 잘라두고 정원을 갈아엎는 혁신적인 방식을 사용하긴 했다. 
 조금 더 나아가면 우리가 마더의 세팅에 대해 추론해볼 수 있다. 필요에 따라 인간을 죽이는 것으로 보아 아시모프의 3원칙같은 걸 채택하진 않았다. 뭐, 처음엔 그랬겠지. 하지만 드로이드 형태가 많은 것으로 보아 이내 마더를 전쟁에 사용하기 시작했고 그럼 타국의 군인(혹은 민간인)을 죽이기 위해 세팅을 바꿨을 것이다. 임무 수행의 효율성을 위해 수많은 개체가 하나의 의사결정 구조에서 유기적으로 움직이는 시스템을 채택했을 것이고 그 와중에도 인간을 위해 움직인다는 핵심적은 부분은 건드리지 않았을 것이고 그 결과 인간을 위해 인간을 죽이는 모순적인 프로그램이 만들어졌겠지. 그 상황에서 우리의 로봇이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단 하나의 개념, 국적이나 인종이라는 개념 하나면 흔들리면 어떻게 될까? 보나마나 마더를 부리던 나라에서도 권력을 비롯한 자신의 이득을 위해 마더를 조종하고 싶었던 인간들이 많았을 텐데. 마더같이 강력한 시스템을 구축하고 나면 모든 머리 달리고 욕망을 주체 못하는 인간들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마더를 재프로그램하려고 들지 않았겠나. 그 와중에 마더는 자신이 사랑하는 인간을 위해 게임을 다시 시작하기로 결정하고 이런저런 구실로 배아를 모았겠지. 그러니 마더의 이 모든 행동은 지극히 감정적인 이유가 된다. 인간을 위해, 더 좋은 인간사회를 만드는 것. 그렇기 때문에 나는 딸에 대한 마더의 사랑이 연기였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물론 마더는 딸이 경악할만한 많은 살인을 저질렀지. 그것도 사실이다. 마더는 그저, 자신의 여러 면을 필요에 따라 적절하게 보여줬을 뿐이다. 자신의 딸을 위해. 자신의 딸을 엄마로 만들기 위해. 

 나는 이것이야말로 좋은 SF라고 말하고 싶다. 현실과 다른 어떤 가정 위에서 논리적인 이야기를 만들어나가고, 그 허구의 이야기 속에서 무언가가 사람의 마음을 건드리고, 그것이 마치 사실인 것처럼 이런저런 공상을 펼쳐나갈 수 있는, 상호 합의된 가치 있는 허구. 

by 날아라개고기 | 2019/08/03 15:11 | 감상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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