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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받는 작가의 현명한 선택 - 타워

 요즘 제목 짓는 꼬라지 하고는. 이런 패러디 누가 알아본다고.

 원래는 빌려서 생각이었는데 평이 좋아서 샀다. 박민규의 코멘트가 붙어있는 게 마음에 안 들었지만 오멜라스가 책을 이쁘게 잘 만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름부터가 훌륭하지 않은가. 낭기열라와는 차원이 다르다(내가 <사자왕 형제의 모험>을 안 좋아해서 그렇다. 반면에 내가 르귄 작품들 중 가장 좋아하는 단편은 바로 <오멜라스를 떠나는 사람들>이다. 출판사의 이름은 바로 그 취향을 말해주는 거다.)

 나의 우리나라 SF에 대한 견해는 한 마디로 '힘이 약하다'는 것이다. 수준미달이라거나 완성도가 떨어진다는 게 아니고 정말 힘이 약하다. 한국 SF 창작의 선구자였던 듀나의 저주인가 싶기도 하고(따로 언급할 기회가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듀나를 안 좋아하는 이유는 파고 들어가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그는 창작보다 평론에 알맞다). 이땅의 장르독자답게(당연히 그들도 독자로 시작했을 것이다) 과학적 소양이나 SF적 관습에 대해서도 탄탄하고 글이나 구성도 나쁘다는 생각은 안 드는데 아무래도 근본적인 힘 자체가 딸리는 느낌이다. 정통 SF처럼 환경을 전복시키는 무지막지한 발상이 있는 것도 아니고 섬세한 스타일로 짜릿하게 공감을 주는 것도 아닌, 소품 식의 창작이 많다. 제대로 된 장편이 아직 없다는 것도 그렇고(복거일은 일단 제외). <타워>도 이런 비판을 하나도 비껴나가지 못한다. 빈스토크에 대한 공학적인 의문에 대해 전혀 설명해주지 않고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는 소소한 장치들도 과학적이라기보단 문화적인 것들이다. 개중에는 굳이 SF가 아니라고 충분히 가능한 작품들도 몇몇 있다. 내가 <비잔티움의 첩자>를 싫어하는 이유는 그것이 SF일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익숙한 사실들이 색다른 배경으로 그려지는 것도 하나의 재미라고 볼 수 있긴 한데 그걸 굳이 대체역사라는 이름씩이나 붙여가면서 SF로 쓸 필요가 있나 싶어서 그렇다. <타워>역시 과학적 차별성이 별로 보이지 않기 때문에 이런 비판이 가능한데 <타워>에 대해서 그런 시각으로 비판하는 건 약간 핀트가 어긋난 것이 아닌가 싶다. <타워>는 아이디어에 의존하는 고전적인 SF가 아니라 2009년 한국에서 100% 공감할 수 있는 사회적인 소설이기 때문이다.

 나는 한국에서 SF를 쓰는 건 굉장히 불리하다고 생각했다. SF는 어쨌거나 보는 사람들만 보는 책인데, 이 보는 사람들이라는 것이 이미 외국의 훌륭한 SF에 의해 눈이 엄청나게 높아진 인간들이기 때문에 만족이 어렵기 때문이다. 여기엔 중간층이 없다. 안 보거나, 마니아거나. 각 언어의 문학적 전통이라는 건 굉장히 중요한 건데 한국에는 SF가 새로 태어나는 시기라서 뭐가 없다. SF는 장르적 특성이 너무 강해서 개별 문화권의 개성이 두드러지지 않기 때문에 자국문학이 가지는 강점도 별로 없다. 개인적으로는 별다른 천재가 출현하지 않는 한 계속 지지부진한 상태가 아닐까 싶었는데 <타워>가 나왔다.
 <타워>에서 가장 칭찬하고 싶은 부분은 SF라는 걸 너무 의식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왠지 SF하면 죽여주는 아이디어가 있어야 할 것 같고, 기존의 발상의 완전히 뒤집어야 할 것 같고, 결말에는 독자의 뒤통수를 후려쳐야 할 것 같고, 겁나 디테일해서 작중의 세계가 막 살아 움직여야 할 것 같고 뭐 그렇지 않나? 사실 그런 거 진짜 어렵다. 특히 웬만한 아이디어는 다 써먹었고 수 만명의 작가들이 미친듯이 발상을 짜낸 이후기 때문에 요새는 <쿼런틴>같은 몇몇 예외를 제외하고는 그런 거 잘 없다. 게다가 아이디어라는 게 머리를 쥐어짠다고 나오기나 하냔 말이지. 괜히 열라 평범하거나 말도 안 되는 발상을 가지로 SF랍시고 써대게 되기 마련인데 배명훈 씨는 그렇지 않았다. 가장 칭찬하고 싶은 부분이다.
 사실 <타워>의 가장 훌륭한 점은 위트다. 커트 보네거트나 <캐치 22>를 보듯이 사회비판에는 위트가 필요하다. <타워>는 SF가 가지는 새로운 환경이 주는 재미와 사회비판적 시각이 섞인 위트가 혼합되어 있는데 그 방식과 비율이 훌륭하다. <타워>의 성공적인 부분은 거의 다 여기에 의존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동원박사 세 사람>같은 경우는 패러디에 골몰한 나머지 좀 무리하게 나갔다고 생각하는데 전반적으로는 아주 잘 되어 있다. 그런 면에서 내가 가장 재미있게 읽었고 또 가장 잘 되었다고 평가하는 건 <엘리베이터 기동연습>이다. SF적 재미가 충분하고 주제의식이 잘 녹아 있으니까. <타클라마칸 배달사고>는 책 전체의 주제를 위한 편성이긴 하지만 SF느낌이 너무 없고, <자연예찬>은 흡입력이 좀 부족한 감이 있다. <광장의 아미타불>은 작위적인 느낌이 강한 게 흠이고 <샤리아에 부합하는>의 경우는 가게 주인들의 선택이 생뚱맞다(벽에 묻어놓은 걸 65년만에 파내는데 그동안 가게 주인들이 뭔가 건드렸다고 생각하기는 힘들지 않나?). 쓰고 보니 욕만 한 것 같은데^^ 전반적으로 재미있게 읽었고 잘 된 작품이다. 위에 열거나 몇 가지는 이를테면 투정이랄까?

 어떤 문제를 지적했을 때 그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도 있지만 꼭 그래야 하는 건 아니다. 조금 다른 각도로 틀어보면 그건 문제가 안 될 수도 있다. 인생에 정답은 없는 법이니까(그런 면에서 이영도 씨는 여자가 등장하지 않는 소설을 썼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모든 SF가 '하드'해야 되는 건 아니잖아(진정한 하드SF는 <중력의 임무>밖에 없잖아 ㅋㅋㅋ). 물론 이 땅의 SF가 모조리 다 이런 방향이면 곤란하지만 아직 그런 걱정을 하기엔 10년은 이른 것 같고. 여튼 <타워>는 한국의 독자들에게 아주 반가운 책이 된 것 같다.


 덧. 물건 집중의 아이디어는 <초록 연필> 때도 작품으로 만들기엔 무리라고 생각했는데 또 해버렸다. 전작이 못내 아쉬웠나?
 덧덧. <자연예찬>에서 보니까 배명훈 씨의 글 쓰는 스타일에 장편을 쓰는 게 쉬운 작업이 아닌 것 같은데 부디 조급해하지 말고 마음 가는 대로 찬찬이 썼으면 좋겠다.
 덧덧덧. <누군가를 만났어>에서 가장 좋게 본 작품은 <종의 기원>이었는데 김보연 씨는 요새 뭐하시나?

by 날아라개고기 | 2009/10/18 15:37 | 트랙백 | 덧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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